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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서 이벤트로 한국일보 04월 12일 1977-04-12 1186
한국일보 1977. 4. 12

전위예술 해프닝서 이벤트로

지난 2일 서울화랑에서 열린 전위미술가 장석원씨와 유상선양의 「혼인의 이벤트」(3일자 보도)는 숱한 화제를 모았다.
「단순히 결혼식일 뿐이다」,「예술이다」의 입씨름을 떠나서라도 한동안 잠잠하던 전위 예술 논쟁에 일반의 관심을 쏠리게 했고, 전위 예술인들에겐 하나의 촉진제가 된것 같다. 더욱히 반연극의 기수 으젠느ㆍ이오네스코의 방한(17일)에 앞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같다. 앞으로도 많은 논란 속에 비슷한 작품이 선보일 것 같다.

우리나라 전위예술이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처럼 화제를 모았던 작품발표회도 드물다. 그동안 전위예술인의 누드발표회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자신의 결혼식을 직접 작품화했고, 행위의 대담성, 특이한 음악, 관객과 호흡을 같이한 작품의 과정등으로 남다른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장씨와 유양의「혼인의 이벤트」는 5대의 녹음기에서 고고음악, 유행가 등이 뒤죽박죽 흘러나오는 가운데 시작됐다. 평상복 차림의 신랑 신부. 신랑이 녹음기에 사전에 녹음해놓은 자기자신과 신부 소개 등을 종이에 받아쓰고, 이동안 신부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는 등 마치 장난하는 것 같다.
이어서 3분간 키스를 하고 넥타이를 비스듬히 맨 주례앞에 나가 초스피드의「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예물로 비누와 원고지를 주고받았다.
신랑, 신부쪽에서 보낸 인사장을 받았거나, 신문기사를 보고 왔던 관중들은 대체로 진지한 표정들.
키스할 때 『좀 더하라』는 소리가 나자 폭소가 터진 정도였다.
이「어처구니없는 전시회」에 관계자들의반응도 가지각색.
작곡가 권용진씨와 시인 이근배씨는 『자기네들 만이 가질수 있는 고귀한 것이 전위예술의 세계이므로 남들이 무어라고 할수 없다』고 평했다.
67년 우리나라에 전위예술의 바람을 일으켰던 사람의 한사람인 연출가 방태수씨는 『그날 「혼인의 이벤트」가 「예술이냐」, 「결혼이냐」의 문제를 제쳐놓고라도 고루하고 표현방법이 비슷한 문화권에서 벗어난 무언가 숨통이 트이고 일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주례를 맡았던 이건용씨는 『어느때보다도 시원함과 예술세계에 빠져든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벤트나 해프닝이라고 불리는 소위「전위예술」운동은 50년대 말부터 유럽서 성행했다.
처음엔 화가들이 이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이를「화가의 연극」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점차 확대되고 변질됨에 따라 연극 무용인들이 이에 더 관심을 갖고 작품에 이를 응용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이벤트나 해프닝을 독립된 예술의 장르로 보는 것은 어렵고 예술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영양분같은 것으로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쨌든 전위예술가들은 전위예술은 끝까지 가다보면 해프닝이나 이벤트로 귀일(歸一)된다고 내세운다.
우리나라에 해프닝이 첫등장한 것은 67년이다. 이해 봄 서울에 있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자칭 전위예술가 정강자씨가 나체로 나타나 강국진씨 등과 거품을 터뜨리며 해프닝을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들은 68년 10월 「한강변의 타살」이라는 괴상한 해프닝을 벌이는등 화제를 모아오다 70년 6월「제4집단」을 결성했다.
중심인물은 연출가 방태수, 화가 정찬승, 정강자, 김근림씨.
이들은 제4집단 선언문에서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서구문명의 노예가 되어있다. 우리국민은 자각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본연으로서의 해방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69년 국전때 국립미술관에서의 집단전(集團展)을 비롯, 정강자 무체전(無體展, 70년 8월), 콘돔과 카바마인의 해프닝(70년 5월), 가두 마임극(70년 7월), 육교위의 선(禪, 70년 8월) 등을 계속 발표했다.
그러나 70년 8월 15일 기성문화예술과 기존체제 장례식을 지낸다고 관을 둘러메고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경찰에 붙잡혀 즉결에 넘겨진 뒤 활동이 잠잠해졌다.
이들은 화가나 연극인이지만 무용의 홍신자, 국악인 이애주, 음악가 강석희, 김정길, 백병동씨 등도 격은 다르지만 일반 관념을 벗어난 전위예술작품을 발표한 예술가로 꼽을수 있다. 한때 연극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연극연출가 유덕형씨의「초분」과 안민수의「태」도 전위예술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있다.
해프닝이 이벤트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75년부터다. 혼인의 이벤트 주례를 했던 이건용씨가 75년 4월 서울 백록화랑에서 「오늘의 방법전」이란 행위예술발표회를 가진 것이 그 시초.
이씨는 73년 파리 비에날레에 참가 「신체항(身體項)」이란 작품을 발표했을 때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다.
예술의 경쟁장인 파리에서 우리와 의식구조가 다른 그사람들의 작품을 보고 한국사람이 할수있는 예술이 있고 작가자신도 하나의 매체가 될 수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이벤트는 동양의 선(禪)사상과 분석 철학이 교묘하게 결합한 순 한국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오광수씨는 순 한국적이란 것이란 이해가 안가고 순 한국적이라면 이름자체도 이벤트라 하지말고 우리말을 써야한다고 반박했다.
방태수씨도 이씨와 비슷한 의견이다.
그에 의하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간의 재확인이 이벤트라 한다. 그만큼 논리적이라고 강조한다. 혼인의 이벤트에서 녹음기를 이용한 점 그 자체만도 이벤트가 그만큼 논리적인 것을 입증한다고 역설한다. 미술 연극 음악 등 온갖 표현방식을 동원하기 때문에 토틀 디어터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약간의 거부반응이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흐르면 요즘 유럽에서 이오네스코를 받아들이듯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벤트는 해프닝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해프닝은 즉흥적이고 쇼킹하지만 이벤트는 계획되고 논리적이며 관객과 예술가가 원형적인 입장을 같이 느끼고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병일 기자)
한 자리에 모인 신.구세대
이것이 행위 미술이다.